
“세종에 사무실을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다.”
금융위원회와 협업이 잦은 한 유관기관 관계자가 한 말이다. 금융정책 기능의 기획재정부 이관 가능성이 거론되자, 현장에선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정기획위원회 경제1분과는 주요 대선공약이었던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을 논의 중이다. 분과장인 더불어민주당 정태호 의원을 비롯해 오기형 민주당 의원, 홍성국 최고위원이 포함돼 있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김은경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종욱 스타트런 이사도 경제1분과에 합류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금융당국의 조직 개편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지난달 28일에도 “금융위원회(금융위) 정책과 감독 기능이 뒤섞여 있어 정리가 필요하다”며 기능 분리를 강조했다.
현행 체계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도입됐다. 당시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를 폐지하고, 정책 기능은 금융위로, 감독 집행은 금융감독원으로 분리했다. 금융위 출범과 함께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의 금융정책국과 금융정보분석원 등 일부 기능도 이관했다. 이후 약 17년간 큰 구조 개편 없이 유지됐지만, 학계와 시민단체 등 일각에서는 감독 독립성 훼손과 관치금융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현재 유력하게 논의되는 개편안은 과거 금감위를 부활시키는 방안이다. 금융위의 국내 금융정책 기능을 기획재정부로 이관하고, 감독 기능은 금감위가 전담하는 방안이 핵심이다. 기존 금감원은 금감위를 보좌하는 집행기구로 전환하고, 금융소비자보호처는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으로 분리·격상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금소원의 기능 강화는 이 대통령의 공약집에도 명기됐다.

민주당이 입법·행정권을 모두 쥔 ‘여대야소(與大野小)’ 정국이라는 점에서 개편 추진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 과거 민주당 혁신위원장을 맡았던 김은경 교수는 대선 전부터 논문과 토론회 등에서 금융위 폐지를 공개적으로 주장해왔다.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는 “금융정책과 감독정책은 금융위에, 감독집행은 금감원에 있는 이원화된 현행 체계는 기형적”이라며 “금융위를 폐지하고 금감원과 금융소비자보호원이 금융감독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기형 의원도 지난 4월 기재부의 예산기능을 떼어내 기획예산처로 이관하고, 기재부 명칭을 ‘재정경제부’로 바꾸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금융정책 기능 이관은 금융위의 세종시 이전 가능성과도 맞물린다. 주요 경제 부처 가운데 유일하게 서울에 남아 있는 금융위가 결국 세종으로 옮겨질 것이라는 관측이 금융권 안팎에서 제기된다. 특히 금융위와 협업이 잦은 유관기관들은 조직 개편 논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부는 세종시 내 사무공간 확보 방안을 내부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세종 이전이 현실화되면 실무 효율성을 위해 물리적 거점 마련을 고민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귀띔했다.
다만 실제 개편 단계로 넘어가면 내부 반발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금융위와 금감원 직원 간 임금 체계, 직제, 근무지 이전 등의 문제가 걸림돌이 될 수 있어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제대로 된 인수인계 없이 조직을 나누거나 합치게 되면 업무 공백은 물론, 감독정책의 일관성도 떨어질 수 있다”며 “20년 가까이 유지된 체제를 흔드는 변화인 만큼, 현장에선 불안이 크다”고 말했다.
실무 부담 증가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위와 금감원만 상대하던 상황에서, 향후 금소원이나 별도 위원회 등으로 감독 주체가 늘어나면 사실상 ‘시어머니’가 두세 곳으로 늘어나는 셈”이라며 “자료 제출이나 면담 등에서 실무 혼선과 피로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산업은 주식시장뿐 아니라 자금시장, 외국인 투자자와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개편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예산 조정 수준과는 차원이 다른 사안인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의견을 수렴 중이며, 금융위도 개편 논의 과정에 대한 입장을 전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