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과대학 정원 증원에 반발해 1년 반 동안 수업을 거부했던 의대생들이 구제 조치를 받고 8월부터 학업에 복귀한다. 추가 의사 국가시험(국시)에 국민 세금이 들어간다는 사실에 여론의 반발은 거세지는 상황이다. 많은 환자들이 의료 공백에 따른 피해를 입은 가운데 의대생들은 별다른 불이익 없이 복귀한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공정성도 흔들리고 있다. 시민사회계뿐만 아니라 의료계 내부에서도 의대생들의 진정성 있는 반성과 재발 방지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9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와 대학 총장들이 의대생들의 수업 복귀를 결정하면서 학생들은 올해 2학기에 복학할 수 있게 됐다. 오는 8월 의대생 복귀에 이어 9월 전공의들이 돌아오게 되면 지난해 2월 발생한 의료 공백은 메워지게 된다. 하지만 갈등의 뇌관은 남아 있다. 의대 교육 정상화를 위해 먼저 학업에 복귀한 의대생과의 형평성 문제, 수업 거부 재발 방지 대책 등은 뒷전으로 밀려난 상태다.
8000여명에 달하는 유급 대상 의대생들의 유급 처분은 그대로 하되 전례 없는 특혜를 받고 다시 수업을 듣게 됐다. 교육 과정은 6년에서 5년 6개월로 줄어들고, ‘의사 배출 공백 방지’를 명분으로 2026년 8월 졸업하는 본과 4학년, 2027년 8월 졸업 예정인 본과 3학년에겐 추가 의사 국시 기회가 부여된다. 국시 추가 실시가 이뤄지지 않으면 본과 4학년은 졸업 후 5개월 정도가 지난 내후년 1월에야 의사 자격을 얻게 된다.
2학기 복귀 의대생들은 방학 등을 활용해 1학기 미이수 학점을 이수해야 하는데, 교육 방법을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경희의대, 원광의대 등 일부 의대는 단기간 온라인 강의로 1학기 수업을 대체하거나, 유급 여부 판단을 기말시험 이후로 미루기로 하는 등 편의를 제공하기로 했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 ‘의학교육 평가 인증 규정’에 의하면 각 의대는 주당 36시간, 총 52주의 임상실습 기간을 확보해야 한다. 이 조건을 채운 경우에만 의대 졸업과 국시 응시 자격이 주어진다. 의대 교육 정상화를 위한 고육책이라곤 하나 녹화 영상으로 수업을 듣고 영상을 재생해 출석을 인정받는 방식은 학습 집중도와 효과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크다.
‘감귤’ 낙인찍고 보복 예고…의대생 간 갈등 ‘불씨’
선복귀 학생과 이번에 복귀하는 학생들 간 갈등이 불거질 수도 있다. 일부 강경파 의대생들은 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은 학생들을 ‘감귤’로 지칭하며 보복 예고를 일삼았다. 실제 의정 갈등 국면에서 먼저 복귀한 학생들을 낙인찍고 괴롭혀 경찰 수사로 이어진 사건만 수십 건에 달한다. 최근에도 의료계 커뮤니티인 ‘메디스태프’에는 “복귀 의대생들아 기대해라. 지옥이 뭔지 보여주겠다” 등의 협박성 글이 다수 올라왔다.

시험 족보를 선복귀 의대생들에게 공유하지 않는 등 악습이 재생산될 가능성도 있다. 선배에게 물려받는 시험 자료는 의대생의 복귀를 어렵게 만드는 주요 요인으로 꼽혀왔다. 교육부는 지난달 족보 문화를 고치기 위해 대학에 ‘문제은행 플랫폼 구축’을 권고하는 등 조치에 나섰지만, 2학기 학습 준비에 여념이 없어 구축은 미흡한 상태다.
보복 우려는 커지는데 이를 막을 마땅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복귀 예정인 학생들에게 선복귀 학생을 차별하거나 괴롭히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는 것이 최선이다. 이마저도 의대생 학부모들의 반발이 이어진다. 전국의과대학학부모회연합(전의학련)은 23일 성명을 내고 “복귀생에게 반성문을 강요하기 전에 무너진 교육을 방치하며 정원 증원을 수용한 학교의 성찰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복귀 특혜 반대 청원 7만5300명 돌파
의대생들에 대해 악화된 국민 여론과 따가운 시선은 장기적으로 풀어갈 과제다. 국회전자청원에 올라온 ‘의대생·전공의에 대한 복귀 특혜 부여 반대에 관한 청원’은 지난 17일 게시된 후 28일 오후 1시 기준 7만5300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해당 청원 동의자 수는 지난 22일 5만명을 넘어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회부됐다. 청원인은 “이번 사태처럼 극단적 집단행동으로 본인의 교육과 수련을 중단한 사람들에게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고 복귀를 허용한다면 유사한 방식의 반발이 반복될 것”이라고 짚었다.
교육부는 “학생들의 상처를 보듬어야 한다”면서 의대생들을 감쌌다. 구연희 교육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지난 1년 반 동안 국민, 대학, 학생이 어려운 시기를 겪었고 우리 모두에게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많은 분들이 상처받았다”라며 “특혜라고 하기보다는 학생들 교육에 집중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의료계도 “‘특혜’라는 낙인은 또 다른 상처와 피해를 남길 뿐”이라며 의대생들을 옹호했다.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의대생들은 1년 이상 사회적 책임을 고민해 왔고, 이제 복귀와 회복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고자 한다”면서 “깊은 이해와 공감이 더해지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전의비는 의대생들의 학업 복귀가 “특혜가 아닌 정상화 과정”이라고 보지만, 의료계 일각에선 학생들이 반성 없이 복귀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시각이 있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교수는 “의대 교육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엄중한 책무다. 학사 일정, 평가 기준 모두 이들의 입장에 맞춰 조정하라는 요구는 교육기관으로서 받아들이기 어렵다”면서 “국민의 신뢰를 받는 의료인이 되기 위해선 실력뿐 아니라 책임감과 도덕성이 필수적이다. 반성과 사과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