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당국이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대규모 손실 사태와 관련해 과징금 부과 기준을 ‘투자원금’(판매금액)으로 정했다. 은행별 과징금이 조 단위로 불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은행들은 자율배상에 나선 만큼 감경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는 지난달 제14차 정례회의에서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상 과징금 산정 기준을 ‘판매금액’으로 정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앞서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는 2021년 초 이후 판매 물량을 중심으로 지수 하락과 3년 만기 도래에 지난해 대규모 손실을 맞았다. 이를 두고 가입자들이 판매 과정에서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제기하자 금감원은 지난해 1~3월 판매사들에 대한 검사를 실시했다.
현행 금융소비자보호법 제57조는 ‘위법 행위와 관련된 계약으로 얻은 수입, 또는 이에 준하는 금액의 50% 이내’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여기서 언급된 ‘수입’을 두고 은행의 ELS 판매금액으로 볼 것인지, ELS 판매를 통해 얻은 ‘수수료’로 제한할 것인지 해석이 엇갈려 논의가 지연돼 왔다.
최근 금융위가 판매금액 기준으로 방향을 정하면서 은행권은 긴장하고 있다. 은행들의 홍콩H지수 ELS 판매금액은 약 16조원에 달한다. 단순 계산 시 최대 8조원을 과징금으로 토해내야 한다. 반대로 수수료를 기준으로 산정할 경우 총수입이 감소하면서 과징금 규모가 최대 수백억원 수준으로 떨어진다. 홍콩 ELS 판매액은 은행별로 KB국민은행 8조1972억원, 신한은행 2조3701억원, NH농협은행 2조1310억원, 하나은행 2조1183억원, 우리은행 413억원이다.

다만 과징금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이복현 전 금감원장은 지난해 2월 은행의 선제적 자율배상을 유도하기 위해 제재 감경을 조건으로 내건 바 있다. 그는 당시 “금전적으로 배상해 준다고 해서 잘못을 모두 없던 것으로 할 수는 없지만, 상당 부분 시정하고 책임을 인정해 소비자에게 적절한 원상회복 조치를 한다면 당연히 과징금 감경 요소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 시행세칙 제46조에 따르면 ‘금융 거래자의 피해에 대한 충분한 배상 등 피해 회복 노력 여부’를 제재 시 참작한다. 당국에 따르면 자율배상이 진행 중인 계좌는 지난해 6월 말 기준 6만6000건에서 12월 말 16만9000건으로 늘었다. 자율배상 최종 동의 건수도 4만1000건에서 15만9000건으로 급증했다. 전체의 93.8%다.
은행권은 이러한 점을 근거로 과도한 제재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 보면 자율배상을 통해 일정 부분 고통 분담을 한 상황인데, 과징금이 지나치게 높게 책정될 경우 이의 제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무리한 제재는 결과적으로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 역시 “은행들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최근에는 주주 가치도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만큼, 과도한 압박은 자칫 ‘몰아세우기’로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제재 수위 결정까지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통상 금융당국의 제재절차는 제재안 사전 통보 후 제재심의위원회, 금융위 정례회의 등을 거쳐야 하는 탓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당국이 과징금 기준 방향을 의결한 것은 맞지만, 제재에 대한 의결은 아니다”라며 “현재 회사별 제재 양정 작업이 진행 중이며, 행정 절차상만으로 한 두달 이상 소요된다. 최종 결론까지는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기준이 정해진 만큼 박차를 가할 것”이라며 “확답은 어렵지만 연내 발표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금감원장 공석 상태도 변수다. 전임자의 입장을 계승할 수도 있지만, 전면 재검토하거나 기조 자체를 바꿀 가능성도 거론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윤석헌 전 원장이다. 윤 전 원장은 2018년 취임 직후, 대법원 판결로 종결된 ‘키코 사태’를 전면 재조사해 은행권에 배상을 지시했다. 우려와 달리 금감원장 공백이 제재 수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금감원 관계자는 “실무선에서 올라간 제재안을 원장이 뒤집는 경우는 드물다”며 “전례와 기준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