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센 상법’으로 불리는 2차 상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제약·바이오 업계에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오너 경영 지배력이 강한 제약사 특성 때문이다. 신약 개발 투자 등 경영 의사결정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9일 국회 등에 따르면 2차 상법 개정안이 지난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집중투표제 의무화다. 내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는 정관으로 집중투표제를 배제할 수 없게 된다. 집중투표제는 여러 명의 이사를 선출할 때 각 주주에게 이사의 수 만큼 투표권을 줘 특정 후보에게 집중적으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제도다. 소액주주도 이사 구성권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감사위원 분리 선출 기준을 1명에서 2명 이상으로 확대하는 내용도 담겼다. 감사위원회의 독립성과 감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앞서 통과한 1차 상법 개정안이 소액 주주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 핵심이었다면, 2차 개정안을 통해 소액 주주가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후속 법안을 마련한 것이다.
1차 개정안은 이사회가 단순히 회사나 대주주의 이익만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주주를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충실 의무’를 법적으로 명문화했다. 또 감사위원 선출 시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이른바 ‘3%룰’을 적용하고,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의 전자주주총회 도입을 의무화한다.
1차와 2차 개정안이 소액 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고 기존 대주주 중심이 지배구조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제약·바이오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제약사는 전통적으로 오너 경영 체제를 유지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대 주주의 이사회 장악력이 약화될 수 있다.
현재 상장된 국내 주요 제약사 중 자산총액이 2조원을 넘는 곳은 유한양행, GC녹십자 등이다. 대웅제약은 지난해 1조9769억원을 기록했고, 한미약품도 올해 1분기 기준 자산총액이 1조9839억원을 기록하며 내년 2조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이 가운데 전문 경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유한양행을 제외하면 모두 오너 경영 체제라 상법 개정안의 영향권 아래에 놓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영진의 권한 행사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존재한다. 신약 개발을 위해 많은 연구개발(R&D) 비용이 투입되는 제약·바이오산업 특성상 주주의 단기적 이익과 회사의 장기 전략이 충돌할 가능성이 열려있다.
가령 경영진 입장에선 당장 성과가 나지 않아도 신약 개발을 위한 투자를 단행해야 하지만, 주주들은 단기 수익을 내는 데 집중하거나 배당 성향을 높이는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주주 간 이견이 발생할 경우 일부 경영 활동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약·바이오업계 관계자는 “2차 상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제약·바이오 업계에 타격이 클 수 있다”면서 “오너 경영 체제를 유지해 온 제약사들의 지배구조에 변화가 올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