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트릭스! 헌트릭스! 헌트릭스!”
조명이 점멸되자 상영관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약속이나 한 듯 박수를 치며 열광했다. 이어 스크린에 등장한 걸그룹 헌트릭스의 이름을 목청껏 연호했다. 과연 빌보드 신기록을 경신 중인 K팝 걸그룹에 걸맞은 환대였다. 보이그룹 사자보이즈 ‘소다 팝’(Soda Pop)의 멜로디에 절로 들썩이는 어깨는 군무에 버금갔다. 20일 부산 우동 동서대학교 소향씨어터 신한카드홀에서 국내 최초로 열린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싱어롱 상영회 현장이다.
‘피케팅’(피 튀기는 티케팅)을 거쳐 표를 거머쥔 관객들이 모인 만큼 영화 상영 전부터 분위기는 뜨거웠다. 몇몇은 콘서트에 온 듯 아이돌 응원봉을 챙겨왔고, 사자보이즈를 연상시키는 갓을 쓴 팬도 눈에 띄었다. 헌트릭스 무대 의상과 흡사한 옷차림을 한 어린이도 있었다. 한 남성은 휴대전화로 ‘유어 아이돌’(Your Idol) 가사를 보며 입을 벙긋거렸다.
시작은 ‘하우 잇츠 던’(How It’s Done)이었다. 화면 아래에는 박자에 맞게 색이 바뀌는 영어 자막이 흘러나왔다. 한국어 발음 표기는 따로 없었지만 노래를 부르기에 큰 어려움은 없어 보였다. 다만 첫 싱어롱인데다 한국에서 통용되는 극장 매너가 있다 보니, 초반에는 많은 관객이 크게 노래하는 것을 주저하는 눈치였다.
어색한 기류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헌트릭스를 전 세계 정상 걸그룹에 올려놓은 ‘골든’(Golden)부터 흥을 참을 수 없게 된 탓이다. 관객들은 웬만한 가수도 소화하기 쉽지 않은 고음부를 거침없이 내지르는가 하면, 대사로 전주의 음량이 줄어드는 때도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이렇듯 공기가 달라지자 노래가 아닌 장면에서도 쉽게 반응이 터져나왔다. 모두 더피가 쓰러트린 물건을 똑바로 세우려고 할 때마다 깔깔 웃고, 영혼을 홀리는 사자보이즈의 끼부림에 자지러졌다. 진우가 귀마로부터 루미를 지키고 자신의 에너지를 건넬 때는 탄식했고, 이내 루미가 더 강해진 칼로 귀마를 두동강내자 환호했다. 마지막 곡 ‘왓 잇 사운즈 라이크’(What It Sounds Like)에서는 이날 가장 큰 떼창이 울려퍼졌다.
싱어롱 유경험자인 고수빈(30·여) 씨, 싱어롱도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끝까지 본 것도 처음인 진희윤(30·여) 씨 모두 “진짜 콘서트에 온 것 같다”며 웃었다. 또한 고 씨는 대극장에서 본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대해 “확실히 사운드가 좋아서 집에서 봤을 때 못 들었던, 헌트릭스 멤버들이 ‘가자 가자 가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미세한 소리가 들리더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날의 진정한 아이돌은 메기 강 감독이었다. GV(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무대에 오른 강 감독은 자신을 반겨주는 팬들로 꽉 찬 상영관을 둘러보며 “아이돌 된 기분”이라며 웃었다. 이어 “뉴욕 싱어롱 갈 기회가 있었는데 한국에 있다가 가서 시차 적응을 못 해서 못 갔다. 그래서 오늘 처음 참석했다”며 감격했다.
국내 관객에게도 ‘케이팝 데몬 헌터스’ 첫 싱어롱이자 첫 GV였다. 화답하듯 메기 강 감독은 10개가 넘는 질문을 받았고, 질문 기회는 대부분 어린이에게 주어졌다. 이례적인 일이다. 덕분에 예상치 못한 훈훈한 장면도 연출됐다. “감독님이 제일 좋아하는 노래 한 소절만 불러달라”고 요청한 한 어린이 관객과 강 감독이 ‘테이크다운’(Takedown)을 함께 부르며 GV를 마무리한 것이다. 이 관객은 프롬프터도 없이 영어 노래를 막힘없이 열창해, 작품을 향한 대단한 애정을 짐작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