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약에 고통 받는 희귀질환자들…“비용효과성만 따지는 급여기준 바꿔야”

비싼 약에 고통 받는 희귀질환자들…“비용효과성만 따지는 급여기준 바꿔야”

심평원 ‘희귀·중증질환 치료 방향과 사회윤리’ 심포지엄
1인당 약값 연 4300만원 넘는 치료제 52종
근거생산 조건부 급여제도·기금 신설 대안 부상

기사승인 2025-09-25 19:48:11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25일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에서 ‘희귀·중증질환 치료 방향과 사회윤리’ 심포지엄을 열었다. 사진=김은빈 기자

“대부분의 희귀질환자들은 붙박이 간병인이 필수다. 병원에서 발생하는 의료비도 감내하기 어려운데, 보호자 중 한 명은 간병에 매달려야 해서 맞벌이가 어렵다. 평생에 걸친 치료비와 홈 케어 비용으로 가계가 파탄하고, 환자만이 아닌 가족 전체의 삶이 붕괴한다. 희귀질환자 가족의 마지막 선택이 비극으로 끝나는 이유다.”

권영대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정책위원은 25일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주관한 ‘희귀·중증질환 치료 방향과 사회윤리’ 심포지엄에서 이같이 호소했다. 

희귀질환은 유병 인구가 2만명 이하이거나 진단이 어려워 유병 인구를 알 수 없는 질환을 말한다. 심평원에 따르면 국내에 등록된 희귀질환은 현재 1314종이다. 종류는 많지만, 개별 질환 환자 수가 적어 치료제를 만드는 제약사 입장에서는 연구개발(R&D)에 투입된 막대한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약가를 높게 책정한다. 심평원에 따르면 1인당 연 4300만원 이상을 써야 하는 약제는 지난해 기준 52개에 달한다. 평생 한 번 맞으면 장기간 혹은 평생 효과가 지속되지만, 수십억원에 달하는 가격의 치료제도 있다. 환자 혼자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 탓에 정부는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해 이를 일부 분담하고 있다. 

다만 의료에 투입될 수 있는 국가 자원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는 환자의 치료 기회 확대와 재정건전성 사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그 대안으로 언급된 것이 ‘근거생산 조건부 급여’ 제도다. 중증·희귀질환 치료제는 등재 시 임상적 유용성·비용 효과성 등이 불확실하더라도 사후 평가를 조건으로 급여해 환자 사용을 보장하기 위한 취지다. 이소영 심평원 약제성과평가실장은 “치료제에 대한 근거 불확실성을 없앨 수 있는지 살펴보며 사후관리하는 방식”이라며 “현재 해당 제도에 대한 법적 근거는 마련돼 있고, 가이드라인은 오는 11월에 나온다”고 설명했다.

해외처럼 별도 기금을 운영해 환자 접근성을 높이자는 의견도 있다. 심평원에 따르면 영국, 대만, 호주의 경우 희귀·중증질환 치료제를 위한 별도 기금을 운영하고 있다. 영국이 지난 2022년 도입한 혁신의약품기금(IMF)은 재평가에서 급여가 적용되지 않은 경우, 제약사 부담으로 환자가 치료를 받도록 하는 제도다. 호주가 운영하는 ‘생명구조의약품프로그램(LSDP)’은 임상적 유용성은 있으나 비용효과성이 입증되지 않아 비급여로 결정된 초희귀질환 고가의약품에 대해 의사가 개별 환자에 대해 신청하는 방식으로 무상 공급하고, 2년 후 재평가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권 정책위원은 “프랑스도 희귀질환 기금을 운영해 5개년 단위로 대규모 예산을 투입한다”며 “사회적 합의를 통해 공정하고 투명한 기준을 세워 기금을 운영해 안정적인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일학 연세대 의료법윤리학과 교수도 “별도의 재원을 마련하고 그 안에서 우선 순위를 두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급여화 과정에서 비용효과성만 따져보는 현재의 기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경도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는 “노르웨이에서 악성 흑색종 치료제인 ‘여보이(Yervoy)’가 도입될 때 논란이 있었다. 2억원이라는 비싼 약가와 여명을 2~6개월 늘릴 수 있다는 점”이라며 “비용 효과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고, 결국 급여화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어린 나이에 질환이 발생한 환자들의 목소리가 표출되면서, 2013년 3월 결국 급여를 적용하겠다며 결정을 번복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급여화를 위해선 비용효과성을 분석하게 되는데, 노르웨이 사례처럼 어린 나이에 호발하는 질환인 경우나 수명이 더 많이 연장될 수 있는 치료제는 (급여화 논의를) 좀 더 우선해주는 기준을 세울지가 앞으로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비용효과성 지표가 꼭 모든 이득을 고려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한다”면서 “급여 결정 과정에서 희귀성 자체보다는 치명적인 특성이 있는지, 소아에서 호발한다든지 등 이런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비용효과성 분석에서 좀더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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