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D현대가 37년 만에 전문경영인 체제를 마무리하고 오너 경영으로 전환했다. 정기선 수석부회장의 회장 취임으로 새 리더십이 막을 올리면서, MASGA 등 글로벌 협력이 주춤한 국면을 이끌 주역으로서 주목받고 있다. 취임 인사에서 혁신을 통한 위기 극복 메시지를 강하게 드러낸 가운데, 업계에서는 대외 협력 강화와 미래 신성장 동력 투자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HD현대그룹은 17일 올해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HD현대에 따르면 이번 인사는 HD현대중공업-미포, HD현대건설기계-인프라코어 합병을 앞두고 조직 혼선을 최소화하고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예년보다 앞당겨 실시됐다.
이번 인사에서 정기선 수석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했으며, HD현대중공업 이상균 사장과 HD현대사이트솔루션 조영철 사장은 각각 부회장으로 올랐다. 기존 권오갑 회장은 명예회장으로 추대됐고, HD현대 새 대표이사에는 조영철 부회장이 내정됐다. 정기선 회장과 조 부회장은 향후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공동 대표이사로 HD현대를 이끌 예정이다. 임명된 대표이사 내정자들은 주총과 이사회를 거쳐 정식 선임될 예정이다.
정기선 회장은 취임 인사에서 ‘위기를 혁신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임직원들에게 “모두가 미래 개척자(퓨처빌더)가 되자”고 당부했다.
그는 20일 임직원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회사 경영 환경을 ‘엄중’하다고 진단한다”면서도 “미중 패권 경쟁과 경기 침체, 중국발 공급 과잉과 같은 복합 리스크를 과거처럼 함께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국산 상선이 중국 상선 대비 10% 이상 비싸 수주 경쟁에서 어려움이 커진 현실을 짚으며 “오랜 단골 선주들조차 더 이상 한국에 배를 주문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한다”는 현실을 언급했다. 이어 “이런 위기가 처음이 아니다”라며 “울산조선소 기공식 이후 수많은 난관을 넘어온 것처럼, 우리만이 해낼 수 있는 혁신으로 돌파구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해법의 축은 디지털 전환을 통한 품질 향상이다. HD현대는 2021년부터 FOS(Future of Shipyard) 프로젝트를 통해 데이터·로보틱스·AI 기반의 ‘미래형 첨단 조선소’로의 전환을 추진 중이다. HD현대 관계자는 “2030년까지 생산성 30% 향상과 공기 30% 단축 목표로 하고 있다”며 “중국과의 원가 경쟁력 격차를 줄일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회장도 “지난주 한 대형 선주는 우리가 중국보다 선가가 10% 비싸도 연비가 10% 뛰어나기 때문에 우리 선박을 구매하겠다고 했다”며 “돌파구가 보이는 것 같아 가슴이 뛰었다”고 언급했다.
대외 협력도 강화된다. 정 회장은 오는 27일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 포럼에 참석해 회장 취임 후 첫 공식 행보에 나선다. 뿐만 아니라 HD현대는 한미 조선 협력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와 인도 코친조선소 협력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며 해외 시장 진출에도 속도를 낼 방침이라고 밝혔다.
HD현대 관계자는 “HD현대는 마스가 프로젝트의 성공에 이바지함은 물론 우리나라 경제발전과 국익에도 기여할 계획”이라며 “신기술 개발과 끊임없는 경쟁력 강화 노력을 통해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성장해가고 K-조선업 위상을 반드시 지켜나가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번 오너경영 전환이 보다 과감한 혁신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마스가를 포함한 국익과 연계된 대규모 사업에서 정기선 회장의 오너 경영 체재로 책임 경영이 강화되며 기존 실무진 협상력을 넘어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서 “사업 확장·투자에서 보다 적극적인 리더십과 장기 전략 수립이라는 두 가지 이점이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