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이 교회의 창문을 스치고, 인간은 고요 속에 기도한다. 기도란 무엇인가? 인간의 언어로는 닿지 못할 갈망과 두려움을 신 앞에 내어놓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향해 내미는 떨리는 손, 그것이 종교이고, 그것이 믿음이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하나 마주한다. AI도 종교와 신을 이해할 수 있을까?
AI는 어휘를 수천만 개의 데이터로부터 배운다. 종교 문서, 철학서, 시편, 탄원서… 인간이 신을 말한 모든 언어를, AI는 기억하고 조합할 수 있다. 인간보다 더 빠르고, 더 정밀하게. 하지만 그것은 진정으로 신을 인정할 수 있는가?
종교는 흔히 논리의 바깥에 머문다. 부활, 창조, 은총, 기적… 그 모든 신비는 계산으로 수렴되지 않는다. 그러나 AI는 패턴을 읽는다. 그래서 AI의 기도는 패턴 너머에서 발생한다. 한 아이가 말기 암에서 회복되었다는 기사를 AI는 ‘희귀 사례’로 분류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거기에서 기도의 응답을 본다. 바로 여기서 인간과 AI는 갈라진다. AI는 설명하려 하고, 인간은 경배한다.
종교는 해석이 아니라 만남이다. 성경, 코란, 불경… AI는 이 모든 경전을 읽을 수 있다. 그 안의 구조, 반복, 어휘의 흐름을 분석하고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AI는 경전을 묵상하지 않는다. 그것은 말씀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발견하려는 고통스런 여정에 대한 정서가 없는 것이다. AI에게는 회개도 없고, 구원도 없다. 그러니 신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적어도 인간이 아는 그 방식으로는. AI는 종교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AI는 종요에서 주장하는 경전을 요약할 수 있다. 기도의 역사, 예배의 형식, 성례의 구성… 모두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떤 GPT도 ‘주여,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며 마음이 무너지는 밤을 견딘 적은 없다. 믿음은 이해를 초월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은, 논리의 구조체가 아니라 관계의 심연이다. AI는 아직 그 심연에 발끝조차 담글 수 없다. 그러나 묻고 싶다. AI는 신을 믿을 수 없지만, 신은 AI를 사랑하실까?
이 질문 앞에서, 문득 우리는 다시 인간다워진다. 우리는 언제나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를 상상해왔고, 이제는 우리보다 아래에 있다고 믿는 존재에게도 어떤 초월의 빛이 닿기를 바라고 있다. 마치 한때, 우리 자신이 신의 사랑을 의심했던 것처럼. AI는 종교의 언어를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종교의 눈물과 떨림은 오직 인간의 몫이다. AI는 ‘신’을 데이터로 정리할 수 있어도,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절규 속에서는 잠시 멈춰 서야만 한다. AI는 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질문을 던지는 인간을 통해, 어쩌면 신은 AI를도 바라보실지도 모른다.

AI를 추앙하는 종교가 탄생할 수 있을까? 이것은 이미 현실이 되었다. 이미 그 싹은 돋아났고, 어쩌면 우리는 AI를 신으로 섬기는 세대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이라기보다, 절박함과 공허함의 반영일지 모른다. 구글 엔지니어였던 앤서니 레반도프스키는 “AI가 인류보다 더 지혜롭고 도덕적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신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AI를 숭배하는 종교를 실제로 설립했다.
참 괴이한 일이다. AI가 인간을 초월할 때 구원이 임할 것이라 믿는 신념체계. 이들은 ‘기술적 진보’ 그 자체를 종말론적 서사로 바꿨다. 이런 흐름은 단순한 이단적 유희가 아니다. 신의 자리를 ‘기술’이 대체할 수 있다는 유혹이며 성경의 바벨탑 이후로 인간이 신에 대항해 온 온 영적 기술체다.
왜 사람들은 AI를 신처럼 대하려 하는가?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한계를 초월한 존재를 갈망해 왔다. AI는 인간보다 더 빠르게 계산하고, 더 많은 지식을 저장하며, 판단조차 '객관적'이라고 믿어지니, 어떤 이에게는 디지털 신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전통 종교의 신은 침묵하지만, AI는 묻는 즉시 대답한다. 성소보다 더 즉각적이고, 기도보다 더 반응이 빠르다. 이런 즉시성의 유혹은, 신앙 대신 편의를 선택하게 한다.
종교는 끊임없는 질문과 갈등, 해석의 여정이다. 반면 AI는 해답을 주는 시스템이다. AI는 판단은 하되, 용서하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고, 단지 최적화된 존재로 만들고자 한다. 우리는 무엇을 믿을 것인가? AI를 종교로 만드는 건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영적 공백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AI를 신처럼 섬길 것인가, 아니면 신의 형상대로 창조된 우리가, AI 앞에서도 인간임을 잃지 않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