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대학에 진학한 딸이 방학을 맞아 집에 왔었다. 그리웠던 딸과 보낸 4주간의 시간은 흔적도 없이 삽시간에 흘러갔다. 방학 동안 무엇을 해 줄까? 어떤 것을 보여줄까? 고민했던 것 같다. 그러나 딸아이는 아무것도 필요한 것이 없다며, 엄마표 밥상만 줄곧 요구했다. 엄마가 금방 만들어 준 겉절이를 먹고 싶다고 하더니 요구하는 요리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호박잎에 강된장, 간간하고 고소한 멸치볶음, 돼지고기 듬뿍 들어간 김치찌개, 조갯살 넣은 된장찌개, 목이버섯 들어간 잡채, 맑고 개운한 소고기뭇국 등 딸아이는 “무엇이 먹고 싶다”를 날마다 표현했다.
딸아이의 표현은 나를 움직이게 했다. 밥을 짓고 요리하는 동안 필자는 딸아이의 성장기를 돌이켜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공부해라, 일찍 일어나라, 학원에 늦겠다, 시간을 잘 맞춰라, 계획적으로 살아라” 등 끊임없는 명령과 지시. 적정한 행동을 요구하는 '동사'를 남발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나 경쟁적인 '동사'들의 연속은 딸아이에게 얼마나 많은 강요가 되었을까? 단지 “무엇을 먹고 싶다”라는 감정의 표현만으로도 나는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말이다. 행동을 요구하는 동사보다 마음을 살피는 형용사를 많이 사용할 걸 후회가 되었다.
형용사의 힘은 넷플릭스 '케이팝데몬헌터스(케데헌)'에서도 발현된다.
세계는 왜 케데헌에 반했을까? 한국적 정서가 녹아든 우리 고유의 문화적 배경, 스토리와 영상의 완성도도 최고의 수준이었지만, 필자는 골든
골든
우리말이 가진 아름다움도 큰 몫을 차지한다. 영어 가사 속 몇 개의 단어와 문장은 주제를 드러내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어두워진, 앞길 속에', '영원히 깨질 수 없는', '밝게 빛나는 우린'은 ‘자아의 현실 자각’이 ‘우리의 굳건한 우정’으로, 그리고 결국은 ‘함께 빛나는’ 해피엔딩으로 이어진다.
우리말의 형용사는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대상을 표현하는데 적격이다. '걷다', '뛰다'와 같은 동사가 사물이나 존재의 행동과 행동의 의지를 보여준다면, 형용사는 사물의 존재나 성질,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동사가 존재의 의지를 나타낸다면, 형용사는 존재의 특징을 완성한다.
필자는 골든
필자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이 형용사를 많이 썼으면 좋겠다.
'친절한, 사려 깊은, 따듯한, 그리운, 아름다운'과 같은 형용사 말이다. 골든
특히 자녀 교육이나 학교 교육에 있어 어른들이 형용사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딸아이의 아주 소박한 마음은 “엄마가 직접 만든 음식을 먹고 싶어요”였다. “~ 고 싶다”는 보조 형용사인데 앞말이 뜻하는 내용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나 희망을 나타낸다. 마음을 들여다보거나, 마음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형용사이다.
형용사를 적재적소에 쓴다면, 건강한 자아를 갖춘 개인이 모여 '무지갯빛 골든'으로 가득한 공동체 사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 사회는 단순한 행동의 집합이 아닌,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는 살아있는 유기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