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3명. 0.75명.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는 한국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출산율 숫자다. ‘OECD 최고 자살률’, ‘최저 출산율’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눈에 띄는 진척은 없다. 이재명 정부는 근본적인 원인 해결을 위해 범부처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정부 부처 중에서도 자살·출산 문제에 가장 밀접하게 관여하고 있는 보건복지부의 어깨가 무거워진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22일 서울 영등포구 전경련회관에서 출입기자단 정책간담회를 갖고 “그동안 자살예방법이나 종합계획을 만들어서 자살률이 완만하게 감소하고 있었는데, 다시 증가 추세로 전환됐다는 면에서 심각하게 보고 있다”며 범부처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최근 ‘2025 국가자살예방전략’을 의결하고 2024년 기준 인구 1만 명당 28.3명 수준인 자살률을 2029년 19.4명, 2034년 17.0명 이하로 감소시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달성한다면 5년 내 자살자 수를 1만명 이하로 감축하고, 10년 내 자살률 OECD 1위 오명을 벗을 수 있게 된다는 판단이다. ‘2034년 17.0명’이라는 목표는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 다음으로 자살률이 높은 리투아니아의 자살률(17.1명, 2022년 기준)을 고려해 설정한 것이다.
그동안 정부가 자살예방 정책을 세워 해결 의지를 드러내면 자살률은 점차 하락하는 양상을 보였다. 문재인 정부는 자살예방 정책 전담 부서를 설치하고, 자살률을 2022년까지 17.0명까지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는 온라인 자살 유발 정보 24시간 모니터링 등을 추진하며 2027년까지 자살률을 18.2명으로 감축하겠다고 확언했다.
정부의 노력은 실제 자살률 감소로 이어졌다. 2011년 31.7명이던 자살률은 2021년 26명으로 17.9% 줄었다. 그러나 정부가 제시한 자살률 감축 목표에는 끝내 도달하지 못했다. 급기야 2023년과 지난해 다시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연령별로 자살 사망자(1만4438명)를 보면 50대가 전체 20%를 차지해 1위를 기록했다. 이어 40대(18%), 60대(16.4%), 30대(12.4%), 70대(10.8%) 순이었다. 남성 자살 사망자는 여성보다 2.3배 많았다. 다만 자살 시도는 여성이 남성보다 1.7배 많았다.
OECD 회원국 평균(10.6명)보다 2.3배나 높은 자살률 문제에 대해 정부도 경각심을 갖고 있다. 정 정관은 “대통령께서도 ‘(한해 자살 사망자) 1만4500명 정도면 시·군·구 하나가 없어지는 정도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심각한 부분”이라며 “고령층 자살자는 농약 사용 제한 등의 조치로 감소했지만, 20~30대 젊은층에선 계속 증가 추세에 있어 해결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살예방센터 인력을 늘리거나 자살 사망자 유족에 대한 서비스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등 자살 예방 사업을 강화하고, 선제적으로 자살 고위험군을 발굴해 심리 지원을 병행하며 사회적·경제적 위험 요인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범부처 대응에 나설 계획”이라며 “각 지자체가 자원과 상황에 맞게 맞춤형으로 자살 예방 노력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30년간 합계출산율 50% 이상 떨어진 나라 韓 유일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면 출산율은 최저 수준이다. 지난해 기준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가임 기간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0.75명이다. 80년대 중반부터 40년째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지속적인 하락 추세다.
통계청이 지난 3일 발표한 ‘지난 30년간 우리나라의 혼인·출생 변화’를 보면 합계출산율은 1995년 1.63명에서 2024년 0.75명으로 54.2% 감소했다. 이 기간 합계출산율이 50% 이상 떨어진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같은 기간 출생아 수는 71만5000명에서 23만8000명으로 줄어 33% 수준에 그쳤다. OECD 주요국과 비교하면 2023년 기준 프랑스는 1.66명, 미국은 1.62명, 일본은 1.20명 등이다.
다자녀 출산 기반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첫째아 비중이 1995년 48.4%에서 2023년 61.3%로 증가한 반면, 둘째아는 43.1%에서 31.8%로, 셋째아 이상은 8.5%에서 6.9%로 감소했다. 40대 출산이 더 이상 일부 임산부의 이야기가 아닐 정도로 고령 출산이 일반화됐다. 산모의 평균 출산 연령은 1993년 27.5세에서 2023년 33.6세로 높아졌다. 35세 이상 고령 산모 비중도 같은 기간 3.8%에서 37.2%로 늘었다.
저출산 장기화에 따라 노동력 부족, 고령 인구 확대 등 사회·경제 전반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 대응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정 장관은 “현재 국정 과제에도 인구 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의 역할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면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마련할 때 저고위의 조직 체계나 역할 분담에 대한 조정이 있을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저고위의 정책 기능 범위를 확대하거나 권한을 강화할 때 복지부가 사무국으로서 맡은 역할을 충실히 다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