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달여 만에 또 다시 강도 높은 규제책이 나오면서 ‘대출 보릿고개'가 현실화할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단기적인 집값 안정 효과를 기대하는 목소리와 함께 실수요자의 주거 불안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특히 이번 대책이 서민들의 자금줄을 옥죄어 ‘전세의 월세화’를 가속화할 것이란 비판도 잇따른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6·27 대책에 이어 한층 강화된 대출 규제를 시행한다. 수도권 및 규제지역 내 주담대 한도는 주택 시가에 따라 △15억원 이하 최대 6억원 △15억~25억원 4억원 △25억원 초과 2억원으로 축소된다. 스트레스 금리 또한 기존 1.5%에서 3%로 상향 조정된다.
특히 오는 29일부터는 1주택자에 한해 전세대출의 이자상한분이 차주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에 반영된다. 이 외에도 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의 주담대 담보인정비율(LTV)은 40%로 낮아지고, 3억원 초과 아파트를 신규 취득할 경우 전세대출이 제한되는 등 돈줄을 전방위로 조였다.
갑작스러운 대출 절벽 앞에 실수요자들은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직장인 김민혜(30)씨는 “신혼 집 등 실거주 목적으로 집을 사려는 이들도 많은데 자금력 부족한 사람들만 불이익을 보게 될 것”이라며 “대출이 어려워졌으니, 현금 부자들만 유리해지고 서민만 죽어날 것”이라고 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20대 박모씨도 “전세대출을 DSR에 포함하면 소득이 낮은 청년이나 신혼부부는 어떻게 하란 것이냐”며 “대출이 막힌 이들이 결국 전세 시장에서 월세로 밀려나게 되고, 젊은 세대는 임대료 때문에 자산 형성도 못 하고 기성세대의 자산만 키워주는 꼴이 될 것”이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전문가 “공급 없인 1년짜리 처방…시장 혼란 불가피”
전문가들은 이번 고강도 대책이 단기적으로는 시장의 거래량을 줄이고 가격 상승세를 둔화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다만 근본적인 공급 대책이 빠진 ‘수요 억제 일변도’ 정책의 한계도 지적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집 하나에 담보대출과 전세대출이 얽혀 발생하는 깡통전세나 전세 사기 위험을 줄인다는 점에서 정책 방향은 맞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수요 억제책과 함께 서울·경기도의 신속통합기획이나 노후 빌라 재건축 같은 공급 대책이 반드시 병행됐어야 했다”며 “공급이 따라오지 않는 금융 규제는 길어야 1년짜리 단기 처방에 불과하며, 이후에는 다시 가격이 뛸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권대중 한성대 일반대학원 경제·부동산학과 교수는 시장 혼란을 예고했다. 그는 “전세는 다음 세입자의 보증금으로 기존 세입자에게 돈을 내주는 ‘대환 방식’인데 신규 대출이 막히면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연쇄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번 대책은 서민들에겐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 같은 자금 경색이 결국 ‘전세의 월세화’를 가속할 것이며, 시장이 다시 안정화되기까지는 최소 2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측했다.
은행권 긴장… 신용대출 ‘풍선효과’ 우려도
은행권은 긴장감 속에서 시장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주담대·전세대출이 축소되면 신용대출을 대신 찾는 이들이 늘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당수 시중은행은 이미 연말 ‘대출 보릿고개’에 접어들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 중 농협은행과 신한은행은 이미 올해 가계대출 증가 목표치를 초과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추가 규제가 더해지면서 은행들은 신규 대출을 제한하고 기존 대출 상환을 유도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자금 마련이 시급한 서민들이 ‘대출 난민’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번 대책 관련 자료가 유출된 14일부터 문의가 급증했다”며 “규제가 발표되자마자 곧바로 시행되면서 자금 조달 계획을 세웠던 실수요자들이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주담대와 전세대출이 막힌 수요가 신용대출로 몰리는 ‘풍선효과’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 6·27 대책 직후에도 신용대출이 급증하며 가계부채의 질을 악화시킨 전례가 있어, 이번에도 비슷한 현상이 재현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규제 시행 당일인 27일 하루에만 5대 은행 신용대출 잔액은 1711억원 늘어, 전날까지의 일평균 증가액(593억원)의 2.9배에 달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대출이 제한되면 다른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려다 보니 신용대출 수요가 증가하면서 가계부채 구조가 왜곡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