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금융감독 체계 개편안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이찬진 금융감독원장과 금감원 노조가 마주 앉았다. 노조는 금감원 직원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될 때까지 집단행동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12일 금감원 노조에 따르면 이날 오전 이찬진 금감원장과 정보섭 금감원 노조 위원장 대행, 윤태완 비상대책위원장이 면담을 진행했다. 면담에는 황선오 기획·전략 부원장과 정보섭 노조위원장 대행, 윤태완 비상대책위원장 등이 동석했다.
노조는 이 자리에서 금융소비자원(금소원) 분리, 공공기관 지정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노조 측은 “정부가 발표한 조직개편이 시행될 경우 금융소비자가 가장 큰 피해자가 된다”며 민원 접수 지연 및 업무 중복·공백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그간 노조의 요구에 침묵하던 이 원장은 이날 면담에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이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경영진은 깊이 공감한다”며 “공공기관 지정에 따른 독립성 및 중립성 약화 우려에 대해 엄중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세부 운영방안 설계를 위한 관계기관 논의 및 입법과정 등에서 조합원과 직원들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부연했다.
앞서 정부는 금융위원회의 국내 금융정책 기능을 재정경제부로 이관하고, 금융감독 기능은 금융감독위원회로 개편하는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금감위 산하에는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를 둔다. 금감원 내부의 금융소비자보호처는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으로 분리·신설되고, 금감원과 금소원은 현행 민간 기구에서 공공기관으로 재지정된다.

노조는 금감원이 공공기관으로 지정될 경우 금융감독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재정경제부)의 직접 관리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적용으로 경영·재정평가를 주기적으로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평가가 부진하면 원장 해임 건의까지 가능하다. 금감원 관계자는 2007년 금감원이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됐다가 2009년 해제된 전례를 거론하며 “관치금융으로 회귀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금감원장이 전결로 행사할 수 있었던 금융회사 주의·경고 권한이 사라지는 점도 타격이다.
이에 700명 안팎의 금감원 직원들은 나흘째 ‘조직개편 반대 출근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노조와 직원들은 금융위원회 설치법 개정안 재검토를 촉구하며 “금융위 설치법 개정안 충분히 논의하라”, “금융 전문가로서 부끄럽지 않으냐, 금융위 정신 차리라”, “어설픈 금융업법 개정안 원점에서 다시 하라”고 목소리 높였다.
국회 일대에서 장외 투쟁에도 나설 방침이다. 금감원 노조 관계자는 “다음 주 중 전 직원이 참여하는 국회 앞 집회를 시행해 투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금융감독 개편을 주제로 국민의힘 의원실과 토론회 개최도 추진 중이다.
금감원 직원들은 친여 성향의 유튜버 김어준씨의 발언에 공분하는 모습도 보였다. 김씨는 지난 11일 자신의 방송에서 조직개편에 대한 금감원 직원들 반발을 두고 “개인의 삶에서는 납득할 만한 불만”이라면서도 “퇴사 처리하는 걸로, 원하는 대로 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금감원 내부 게시판에는 김씨 발언을 비판하는 댓글이 쇄도한 것으로 알려졌다.